2007년 7월 16일 월요일

명동성당 벽돌공법

kim sanghoon
건축
문화
기독교는 히브리인의 일신교에서 발전된 종교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창시되어 그의 사후 사도들의 포교로 로마를 중심으로 교세는 굳어지고 세계적인 종료로 발전되었다. 세계주의적 사랑을 바탕으로 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된 기독교는 귀족이나 노예도 동일시하고 로마인들이 즐기던 잔혹한 투기나 호탕한 대욕장을 비난하고 우상숭배를 부정하고 로마의 관습에 따르지 않았다.

이 시대는 고대가 중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이며 시대적인 특징은 기독교가 차츰 사회생활 속으로 그 세력을 뿌리내린 것과 게르만 민족이 4세기 초 북방 야만족이 북부 유럽을 침입함으로 인하여 이를 견디지 못하고 남하하여 로마령으로 옮겨와서 결국에는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국가를 건설했다는 점이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칙령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부터 로마네스크 양식이 시작된 9세기경사이에 기독교 건축에 집중되어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유럽지역에서 전개된 기독교적 건축양식

2. 초기 기독교 건축의 특성

재료 및 구조

재료나 구조에 있어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지 못하여 로마의 건축양식을 계승

로마에서 사용되었던 두 가지 구조방식을 지속적으로 사용

기둥과 보에 의한 가구식 구조

기둥과 아치에 의한 아케이드 구법

기독교 건축의 발달

대부분의 건축 활동이 기독교에 집중되어 교회, 세례당 등의 기독교 건축물이 발달

기독교건축 이외에 건축분야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발달도 부진

교회 건축양식의 정립

로마시대의 공공건물이었던 바실리카를 교회 건물로 전용

급속한 교세확장에 비해 교회재정이 빈약하여 새로운 건물의 건설이 곤란

교회에서 요구되는 집회 공간, 제단, 사제석 등의 기능과 기존의 바실리카의 기능이 상호유사

바실리카식 교회는 중세 교회건축의 원형으로서 로마네스크 양식을 거쳐 고딕양식에 이르러 완성됨

기독교가 공인되고 기독교 건축이 시작된 곳은 수도 로마였으나 곧이어 동방으로 천도함에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그 무대는 양분되었다. 박해에서 공인으로의 갑작스런 전환은 그들의 건축적인 전통을 가질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며, 또한 종교 자체가 좋은 종교건축을 처음부터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수한 형식의 건축이 없었다.
세계고층건물디자인 사진
개인이야기
잠언 24장

3.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4.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중학교때 기술자격시험, 선생님께서는 용기를 가지고 나가서싸워라.9살때 경복궁 국전심사위원(동양화부분)검사때 문화방송구상조각대전 심사위원.약력도 없고,도서관 박상엽 전집도 검색창에서 살아지고
고층건물은 한국인디자인너인데 대기업은 돈벌궁리로 인격침해를 하고,
작품원작자에도 디자인 품에 권리가 있다.
전경련에 양심에도 호소한다.
다음정부에서는 개인에 행복 추구권을 남용,침해하지말라.

명동성당 박상엽본명 김상훈 (2단계 건축법제시)
건축시설물과 벽에대한성분 (조적식 구조)
대한민국 건축대전에 비디오 상영,(초대는 받고 가서 사인은 하였으나
관리자를 만나이야기 할수없었다.
아쉬운 한국 문화)
The kim at the time of the sanghoon construction culture world-wide skyscraper design photograph personal talk junior high school skill qualification test, the teacher have a courage and go out and when fight.9 living, the respect palace National Art Exhibition mind committee (Oriental painting portion) at the time of the prosecuting attorney there is not also a culture broadcasting conception formation of a cabinet electrification mind committee - a brief history, also the library Pak as a matter of Yub complete works comes to live from the search window and the skyscraper a right to design width the place big business which is a Korean design you does a personality infringement with money punishment deliberation, even to the work original author there is. In former convulsion it appeals even in conscience. From the next government in the individual it does not misappropriate and does not infringe happy pursuit volume to dry. Rumble Catholic church Pak as a matter of Yub real name Kim Sang Hoon (2 phased construction laws hour) the ingredient against the construction facility and the wall (trillion enemy structures) video screening, (the invitation will receive in South Korean construction Taejon and it will go and the cause of death will meet the manager whom it does and it will be able to speak. Inconvenient Korean culture)

평화의 문 (올림픽공원)


문화 (중국 문화)http://fnovel.com
http://9040.com
세계고층건물디자인 사진
개인이야기 href="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iS8rLP7xQlFdEkQfhw0qOoNyBD7hWI-I5y91nc1gdXvywQo2GR46IgggPLHw4DgoWZAZsV3hqtL7APqtcedPX3MM8COmFDdYC1RMoPB4XACe1VeycsUd348Ebuu3vyAwziiHihBTM13e6C/s1600-h/okorean2.gif">

개인이야기: 1987년 6월 학생 시민재야 인사 정치인 등 각계각층이 전국적인 규모로 법인 민주화운동 정부가 4월13일 호헌조치를 발표해 모든 개헌논의를 봉쇄한 가운데 박종철고문살인사건에 대한 은폐조작 사실이 밝혀지자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열망이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 형태로 나타났다.
6월 10일 호헌철폐 및 고문치사사건 조작은폐 규탄대회에서 부터 시작된 민주화 시위는 6월26일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국민평화대행진"까지 이어졌다."70만명참가 전국 곳곳에서""300여명이상이 구속되었다."
민주화운동은 결국6.29선언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7~9월 걸쳐들 불처럼 일어났던 노동자 대투쟁의 기폭제 였다.
기획단장 생각 ,역사는 늘어나지,줄지않는다.
href="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jUkv_91qlG0oUxszvrKOU7pHe4NjQPkxO8uaaP0fBnYaI3b8DWy_HoHV_Un3kl41RZ2NRsHJo7EdQB7i5E5Qz1n8xmaA2akSA0jcs9d6ZnaDLBZRG0N-fRitQhHWLq3rsod__ngZmzgJbM/s1600-h/mkorean.gif">

kim sanghoon
건축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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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야기 1987년 6월 학생 시민재야 인사 정치인 등 각계각층이 전국적인 규모로 법인 민주화운동 정부가 4월13일 호헌조치를 발표해 모든 개헌논의를 봉쇄한 가운데 박종철고문살인사건에 대한 은폐조작 사실이 밝혀지자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열망이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 형태로 나타났다.
6월 10일 호헌철폐 및 고문치사사건 조작은폐 규탄대회에서 부터 시작된 민주화 시위는 6월26일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국민평화대행진"까지 이어졌다."70만명참가 전국 곳곳에서""300여명이상이 구속되었다."
민주화운동은 결국6.29선언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7~9월 걸쳐들 불처럼 일어났던 노동자 대투쟁의 기폭제 였다.
기획단장 생각 ,역사는 늘어나지,줄지않는다.
이 시대에서도 우리는 이 민주에 소중함과 헌법수호에 정신을 계속이어나가 통일에 그날에 붘녁에도 ,이 민주에함성과,시청앞 역에서,아니 시청앞 광장에서,"사랑으로" 만나자던 약속이 ,그속에서,대한민국 함성을 들을수있었다.우연치 않게,한 소년이 스피커 폰을 들고 내이야기를 하면서 사랑으로를 같이 합창하고,분명 우리안에 그 분이 같이 할 거라고 하면서 대한민국을 외칠때.......나는 다시금 애국심이 그 청녀에 눈망울에 보였다.가족이 있기에 국가가 있고,국가가 있기에 우리가 있고,이 땅에 사랑이 충만 하다는 느낌이 필승코리아로 이어졌다.나는 행복했다.중국에서 상엽아,보아라.어머니도 보고있다라는 프랭카드와 "중국 관중에서 나오는 민주화와 북경천안문 민주화 광장에서" 영웅비 처럼 스처지나가는 박상엽님 "나와서 얼굴을 보여 달라는 함성".그 속에서 누군가 지금 이 순간에 아니,다음에 휼륭한 모습으로 ,아니 준비된 모습으로 대중앞에 나와달라는 소리로,다음기회에 연설을 해야한다고 대변인이있었다.
중국인민에 소리가 우리형,자매가 듣고 싶어하는 목소리가 당신입니다.대변인이 아닙니다.그리고,야유와,화이팅,화이팅,화이팅(지아요)자는 소리에 우리도,대한민국 짝작작작짝 이렇게 모르는사이에 하나가 되었다.
앞으로 일년이 안되어서 북경에서도 올림픽 열려 세계인들을 마주하게된다.올림픽정신과 우리시대에 올바른 경쟁,그것 인류 평화에 이바지 하는것이 아닐까!
평화의문 올림픽공원과 세계조각설치미술(1987년~1988년)당시에 나는
대학생이자,고등학생이였다.당당 서울대 법대 학생간부이였고,잠실고등학교학생이기도 했다.수업일수만 채우고,명예 졸업장으로대신 하라는 학교측 설명과는 다르게,위 사건으로 학교을 다니게 되었다.그리고,평화의 문을 제작하게되었다.많은 어린이와 시민들 속에서 작품제작도 하고,작품재료를 가지고온 서폰서 회사 아저씨가 나에게 또한번에 용기를 주었다.이 땅에 민주화가 오고있잖아,아이들과 사진을 꼭찍어두렴,........이 작품에 투표를 해달고 부탁도하고,칭찬도 듣고,한국인으로써 자랑스러웠다.
올림피아드 ,................................정신으로 말이다.
2007년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정부에 지도자는 지적재산권 남용과 계속되어지는 인격적 모멸감,그리고 행복추구권을 말살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 ........
우리 대한민국 시민은 우수한데,아직도 그들은 정권을 유지하기위해,그리고,쟁취하기위해,수 많은 민주 열사들을 역곡(왜곡)하고,탄악(탄압)하고있다.우리는 언제쯤 통일로 갈 수 있을까.

Back each field all classes being a construction culture world-wide skyscraper design photograph personal talk 1987 June student citizen out of power greeting politics national on a scale the corporation democratization motion government April 13th the concealment fabrication fact against the middle Pak bell season torture homicide case which blocks all constitutional amendment discussion to announce the management which breaks blowing should have come to reveal the ardent wish against the democratization of the citizens with national appeared in large scale demonstrative form. June 10th the democratization show of force which is started "for June 26th democracy constitution winning until citizen peaceful vicarious execution position" was joined together from from the abolition which breaks blowing and torture by death event fabrication concealment impeachment conference." "" The above of 300 dawns was bound from 010000 person participation nationwide here and there." The democratization motion led 6.29 declarations finally and the place where it puts out it was successful. 7~9 The month extending field non like it was a detonating agent of the worker large fight which happens. The planning heartbreak thought and history do not decrease do not increase. Even from this time we are valuable in this democracy and spirit continuously we are we go out and and in this democracy in unity at that day nyek, before shouting and watching from reverse, we know in constitution protection and before watching from the open space, "with love" to meet and from the inside, the possibility of listening to a South Korean shouting there is promise which sleeps. accidental not to be, one boy holds the speaker phone and it does it sings together the labyrinth cause and with a love together, That minute percentage well! as will do together inside clear us and when shouting the Republic of Korea....... me patriotism that Chung nye was visible. was a family again to the eyeball to be a nation, was a nation to be we, the love abundance is the impression was joined together in certain victory Korea. me, was happy in this ground. from China upper Yub Oh, See. it sees also the mother and and from the democratization which "comes out from the Chinese spectators" and the Beijing Tienanmen democratization open space phu Raeng card and like the hero rain su it deflects but thin Pak as a matter of Yub "it comes out and the face it seems and the shouting which requests". from the inside the troublesome army song now knows in moment and, afterwords hyul lyung with one features, knows with the features which was prepared before masses to come out, in the sound which requests, that must send a speech in the next chance, there was a spokesman. The Chinese pushed the sound our elder brothers and the sisters to listen to and the voice which it wants is you. is not the spokesman. and, picnic and anger thing, the anger thing, Hwa Yi Ting (Ji Oh the bedspread) in the sound which sleeps us, the Republic of Korea pair became one between work pair it does not know not too much like this. In the future one years do not become and it is the Olympic being opened world even from Beijing and it is confronted and. in the Olympic psychiatry soaking unit proper competition, will not be the fact that it does not contribute it mankind peacefully! The peaceful doubt Olympic park and the world-wide formation of a cabinet establishment fine arts (1987 ~1988 year) when me are the college lifestyle interest and the high student. to be the sugar sugar Seoul National University law school student management, they are a silkworm room high school student, it does. only number of school days to fill, with the school side explanation which is a substitution with the honor diploma of graduation it is different, the school it comes and goes it becomes and and and. and, to produce the door of peace it becomes and and and. it is many it is young and toward an up event and and this and also the work production does from citizen wild inside, It had the work material and from from all phone the company uncle in me also it gave a courage to time and. the democratization came to this ground and Iss canh Oh, it took certainly the child and the photograph and two lyem........ the sea otter entrusting river crossing, also the praise listened to a poll in this work, with a Korean it was proud. Olympia tu................................ it is an end with spirit. 2007 now end will want doing, the leader intellectual property right misappropriation and the people who a history the personality scorning feeling which comes to be continued, and obliterates happy pursuit volume in the government and distort........ Our South Korean citizen the rainwater outdoors, yet them hazard it maintains a political power, hazard, and, it wins, possibility reverse music (distortion) to do the many democracy patriots, the evil which burns (the pressure which burns) it is doing. when about the possibility of going with a unity there will be we.

타워,건축물,스타디움,탑,조각시설물

kim sang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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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야기

건축법과 kim sanghoon




kim sang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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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야기

건축법 이야기
(건축물의설비기준등에관한규칙)


에너지 절약계획서
승용승강기
비상용승강기 의 구조,승강기 제조,관리


영 87조제2항
(배연설비)
(피뢰설비)25미터이상의 건축물에는 피뢰설비를 설치해야한다.
(중앙집중식난방)


에너지절약계획서의 제출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소재, 공립종합대학교.
http://www.uos.ac.kr/

hoonsolo 그리고 건축 세계고층디자인: 건축디자인 일명 스카이라인

hoonsolo 그리고 건축 세계고층디자인: 건축디자인 일명 스카이라인

건축디자인 일명 스카이라인

kim sang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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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야기시설 감리원칙에 의거 디자인을 준수하여,개인에 건축디자인을 준수하여주십시요.
개인에 지적재산권을 남용하지 마십시요.
(국제기구인증 디자인은 승인).이하
국내 건축디자인너 및 건축가에 카피를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랙픽이나,설계도면에서,지식인에 양심에 호소합니다.

수많은 건물에 공법과 디자인을 공익하였으나,건축가와 건설사등은 개인에 지적재산권에 대한권고를 1988년건축협회,박상엽전집,그리고,건축가협회및 현대법령집등.헌법에 위배되는 행위에 유감으로생각합니다. 기타 회사에서 디자인첩을 무단으로 사용하여,개인에 권리와 산업재산권을 남용하므로써,국제적 무리를 헤아릴수없읍니다.또한,대학가에서 연구과제및 프로젝트로 사용하여도 개인에대한권리를 침해한다면 큰 문제가 야기될수도 있읍니다.허락없이 건축디자인을 외국회사에 팔아넘기는 행위와 산업재산권을 허락없이 사용하는것을 용납 할수없으며,전경련은 각성해야 합니다.개인에 영광이자 국제건축디자인너로써 개인에권리와 명이도용으로 엄천난 피해를 입고 있음을 표명합니다.디자인너에 명의는 밝히지않은체 건설사들은 본사명의만 밝히므로서,개인에권리를 침해하였고,수많은 사람들에게 오해에 소지를 남겨,정신적 물질적 피해와 명성,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회사는 각성해야 합니다.수차례,지적재산권에 대한 질이와
권리 남용을 하지 말아 주십시요.다시한번 지식인 양심에 호소하며,정부에 산업재산권남용에도 조사를 요구합니다.이미 언론 보도가 되었고,수 십년전 부터,아파트 건축디자인 부분과 정부청사 건물,서울시 공공건물및 시설물에 대한 디자인 도용으로 개인에 명예를 실추했으며,행복추구권과 인격적 모멸감을 받고 있음을 상기해 주십시요.

건축디자인 일명 스카이라인 (박상엽전집 중국본) (일명,박상엽전집 한국본)
(한국 어용학자들 지적재산권 남용에 대하여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시공 및 건설사도
건축디자인및 지적재산권을
준수하여주십시요.


버즈 두바이(10.11층 내부설계) 아명 ,..........타워

인천타워 아명 ; 장승

(서울 상암)국제센터

프리덤타워 아명 도형 (삼각형 )

타이베이101 빌딩 아명 ; 관 (모자 )

월드 센터

제2롯데월드 아명 :장승

세계금융센터(상하이)

페트로나스트윈타워(말레시아) 공중다리 기타 (홍콩 시티 ) ,
한국 법원청사 공중다리 디자인

서울 예술의 전당 ;아명 관 (건축가 ......)디자인 감리 승인

서울 무역센타........등 기타 작품. 국립 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 (법대) 김상훈.
지적 재산권
지적 재산권(知的財産權)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知的財産權 [ 지적재산권 ]

산업(産業) 재산권(財産權)이나 저작권(著作權) 등(等) 인간(人間)의 지적(知的) 생산물(生産物)에 대(對)한 재산권(財産權), 무체(無體) 재산권(財産權)
지적 소유권이라고도 한다. 지적 소유권에 관한 문제를 담당하는 국제연합의 전문기구인 세계지적소유권기구(WIPO)는 이를 구체적으로 ‘문학 ·예술 및 과학작품, 연출, 예술가의 공연 ·음반 및 방송, 발명, 과학적 발견, 공업의장 ·등록상표 ·상호 등에 대한 보호권리와 공업 ·과학 ·문학 또는 예술분야의 지적 활동에서 발생하는 기타 모든 권리를 포함한다’고 정의(定義)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지적 창작물을 보호하는 무체(無體)의 재산권으로서 공업소유권과 저작권으로 크게 분류된다. 공업소유권은 특허청의 심사를 거쳐 등록을 하여야만 보호되고, 저작권은 출판과 동시에 보호되며 그 보호기간은 공업소유권이 10∼20년 정도이고, 저작권은 저작자의 사후 30∼50년까지이다.
intellectual property right


지적재산권은 인간의 정신적인 창작활동의 소산에 대한 재산권을 말하며, 크게 저작권과 산업재산권(특허권, 실용신안권, 의장권, 상표권)으로 나뉜다.

저작권/ 산업재산권

지적재산권은 크게 문예·학술·미술 등 문화적 창작에 관한 '저작권'과 발명·고안·의장(意匠) 등 산업상의 창작 및 상표 등 영업상의 표지에 관한 '산업재산권(특허권·실용신안권·의장권·상표권)'으로 나뉜다.

저작권(copyright)은 어문, 음악, 미술, 컴퓨터 프로그램, 캐릭터 같은 독창적인 저작물의 저작자에게 부여하는 배타적인 권리로서, 자신의 창작물을 공표하고, 이를 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든 공개 배포 또는 전달하고, 저작물을 다른 사람이 특정의 방법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산업재산권 중 특허권(patent)은 발명에 대한 권리이다. 실용신안권(utility model)은 특허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은 실용적인 발명이나 고안에 대해 주어지는 권리로 상품의 형태, 구조 또는 조립에 관한 기술적 창작에 대한 재산권을 의미한다. 의장권(industrial design)은 상품의 독창적인 모양, 형상 및 색채 등 외관상으로 표현되는 독창성에 대하여 주어지는 권리이다. 상표권(trademark)은 생산자가 자신의 상품을 다른 상품과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문자·도형·기호·색채 등으로 표현되는 상징에 대한 독점적 사용권을 의미한다.


■ 지적재산권의 보호

지적재산권은 배타적 지배권으로서 소유권과 유사하지만 보호기간과 공공적 제한이 정해지고, 국제기구인 세계 지적소유권기구가 있어 권리보호의 보급이 진행되고 있다.

지적재산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국가마다 조금씩 그 보호기간에 차이가 있다.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후 50년간 보호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특허권은 출원일로부터 20년, 실용신안권은 출원일로부터 10년, 의장권은 등록일로부터 15년, 상표권은 등록일로부터 10년이 보호기간이다.

지적재산권을 얻기 위해 정부 기관 등에 꼭 등록을 해야할 필요는 없다.


저작권은 저작한 때로부터 발생하는 권리로서, 등록을 한다든지 하는 어떠한 절차나 방식의 이행은 필요치 않다. 지적재산권 중에서도 산업재산권으로 분류하는 특허권, 실용신안권, 상표권, 의장권은 특허청에 등록을 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

또 작품을 만들어 놓고 발표하지 않았어도 지적재산권 보호를 받는다. 미완성 작품도 지적재산에 해당하며, 사후에 작품이 발굴된 경우 유가족이 그 권리를 이어 받는다.

지적재산권 침해는 친고죄에 해당한다. 즉, 침해당한 사람이 고소. 고발을 해야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불법으로 복제했다고 해도 해당 업체나 개발자가 고소, 고발하지 않으면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는다.

지적 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모든 재산권. 크게 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공업 소유권과 문화 창달을 목적으로 하는 저작권으로 분류된다. 공업 소유권에는 특허권, 실용 신안권, 의장권(意匠權), 상표권, 상호권 등이 있으며, 저작권에는 저작 인접권, 저작자 재산권(복제권, 출판권, 방송권) 등이 있다. 지적 재산권 관련 국제법으로는 공업 소유권 보호 협약(파리 조약), 특허 협력 조약(워싱턴 조약), 세계 저작권 협약(파리 조약) 등이 있으며, 미국에서는 사업 비밀 보호를 위한 부정 경쟁 방지법으로도 보호된다. 최근에는 컴퓨터나 통신 기술에서 소프트웨어 비중이 커지면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적 재산권도 보호되고 있다.
TRIPS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으로, 특허권,의장권,상표권,저작건등 지적 재산권에 대한 최초의 다자간 규범으로 UR다자간 협상의 한가지 의제로 채택되었다.

종전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가간 보호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를 중심으로 파리협약,베른협약,로마협약 등 개별적인 국제협약에 의해 시 행되어 왔으나 보호수준이 미약하고 GATT다자간 규범에 있지않아 무역 마찰의 주요 이슈가 되어왔다.

TRIPS는 이같은 단점을 보완,지적재산권의 국제적인 보호를 강화하고 침해에 대한 구제수단을 명기했다. 또 이규정은 세계무역기구(WTO)회원 국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도 종전의개별적인 협약과 다르다.

이 규범은 최혜국대우를 원칙으로 하며 측허,의장,상표,저작권외에도 컴퓨터 프로그램,데이터베이스,반도체,영업비밀 등도 보호 대상으로 추 가하고 있다.

완전경쟁시장은 특정 상품 또는 서비스 시장으로의 자유로운 진출입이 보장되고 관련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전제가 충족된 완전경쟁시장에서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잉여의 합이 최대가 되기 때문에 상품 또는 서비스의 생산에 필요한 인적 또는 물적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된다고 말한다.

관세청 정보협력국장 김도열(신문 기사 내용 중)
정부의 경제관련 정책의 기본 방향은 시장에서 자원의 배분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각종 규제를 신설하거나 기존의 여러 규제를 완화 또는 철폐하는데 있다.

하지만, 세계의 각국 정부는 이와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다. 그 중 하나의 예가 지적재산권의 부여와 이에 관한 보호이다.

지적재산권은 특허, 상표, 디자인, 저작, 영업비밀 같은 지적인 산물에 대하여 특정인에게 생산 또는 사용에 관한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특정한 지적 산물에 대한 지적재산권의 부여 및 보호는 다른 사람에게 그 산물의 생산 또는 사용에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시장에서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려는 이유는 지적 산물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창조적 혁신노력을 유인하고 촉진하는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창조적 혁신의 산물은 인류생활의 발전과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20세기 컴퓨터의 발명이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점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만일 창조적 혁신의 산물에 대한 적절한 유인과 보상 체계가 없다면 사람들은 창조적 혁신에 몰입하지 아니할 것이다. 창조적 혁신에 몰입하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기 곤란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인류의 삶은 정체의 늪에 빠져들 것이다.

20세기 중반이후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지식서비스 중심의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은 지적 재산의 생산 및 보호에 관한 인식의 중요성을 대폭 배가시켰다.

세계 경제의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개별 기업 또는 국가의 경쟁력은 지적 재산의 생산과 자국 및 타국에서 발생하는 이에 대한 불법 또는 부당한 침해로부터의 보호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에 따르면 세관단속 기준으로 위조 상품의 국제거래규모는 2005년도에 미화 2,000억불에 이르고 있다.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위조 상품의 거래는 국민의 건강이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창조적 혁신과 발명에 관한 의욕을 저해하는 핵심요인이기 때문에 국제교역에서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체제하에서는 상품의 국제 교역에 관한 사항이 주요한 논의 대상이었으나 1994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체제하에서는 지적재산권이 새로운 주요 협상의제가 되었으며, 이에 관한 사항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해 WTO내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이사회’가 설치되었다.

WTO 무역관련 지적재산권(Trade Related Intellectual Properties: TRIPs) 협정에서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의 침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회원국에게 침해에 대한 즉각적인 구제조치와 계속적인 침해방지를 위한 조치를 마련토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특히 이 협정은 위조 상품의 유통방지를 목적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침해방지조치와 관련하여 관세국경에서의 위조 상품에 대한 통관금지절차의 마련과 단속이 핵심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지식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지적재산권의 국제적인 보호노력에 앞장서 왔다.

예를 들면, 미국 관세청은 지적재산권의 국제적인 보호를 위해 위조 상품의 단속에 관해 중국 등 세계 각국의 관세행정기관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지적재산권 침해방지 제도와 지적재산권 침해구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차원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노력에 힘입어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특허등록 건수가 세계 3위에 이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위조 상품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떨쳐버리고 지적재산권을 충실히 보호하는 국가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하여 관세국경에서 지적재산권의 보호 및 침해사범의 단속에 역량을 지속적으로 집중하여 2006년 세계관세기구(World Customs Organization: WCO)로부터 169개 회원국 중 지적재산권 보호 최우수 국가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우리나라는 지적재산의 생산 및 보호 측면에서 더 이상 후진국이 아니다. 또한 혁신적인 지적 재산의 생산과 보호가 기업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의 침해에 대한 단속과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우리나라의 노력을 국제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일명 “짝뚱공화국”이라는 부정적인 국가이미지에서 조속히 탈출해야 할 것이다.

관세청 정보협력국장 김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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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파크





골프장 [golf場]
[명사]<운동·오락> 골프를 칠 수 있도록 설치한 경기장.
a golf course;(a) golf-links;a green코스 위에 정지하여 있는 볼을 클럽으로 쳐서 정해진 홀에 넣어 그때까지 소요된 타수로 우열을 겨루는 경기.

구분 구기경기
기원국 스코틀랜드·네덜란드
한국도입시기 1890년경
코스 위에 정지하여 있는 흰 볼을 지팡이 모양의 클럽으로 잇달아 쳐서 정해진 홀(球孔)에 넣어 그때까지 소요된 타수(打數)의 많고 적음으로 우열을 겨루는 경기이다. 골프코스는 들판·구릉·산림 등 66만∼100만㎡의 넓은 지역을 이용하여 정형(整形)되어 있고, 해변에 만들어지는 시사이드 코스와 내륙에 만들어지는 인랜드 코스가 있다.

넓은 코스에 숲이나 계곡, 연못, 작은 산 등의 장애물을 인공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자연의 강이나 바다를 이용하기도 한다. 볼을 처음 치기 시작하는 지역인 티잉그라운드 및 페어웨이·러프·벙커·워터해저드·그린·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페어웨이와 러프를 총칭하여 스루더그린이라 하고, 벙커와 워터해저드를 총칭하여 해저드라고 한다.

또 코스와 경계는 목책이나 말뚝으로 표시하는데, 경계 밖을 OB라고 한다. 볼을 쳐서 넣는 구멍인 홀의 수는 정규의 것은 18개로 18홀이라 부르며, 전반의 9홀을 아웃이라 하고 후반의 9홀을 인이라 부른다. 공식 선수권대회를 행할 수 있는 코스는 전체길이가 6,500야드(5,940m) 이상이어야 한다. 플레이어는 한 홀에 볼을 넣고 나면 다시 다음 티그라운드에서 새로운 홀을 향하여 플레이한다.

초창기에는 이들 코스의 구획도 골프장의 넓이에 따라 달랐으며, 홀의 수도 일정하지 않았다. 즉 홀 수가 27∼72개인 경우도 있는 등 통일되지 않았는데, 1764년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Saint Anderws)에서 18개로 개조되었고, 이것이 모델이 되어 현재의 모든 코스 단위는 18홀로 고정되었다. 이때부터 골프의 기술적 수준이 스코어에 의해 기록에 남게 되었다.

골프 코스는 2타로 그린에 도달할 수 있는 홀 10개, 3타로 도달할 수 있는 홀 4개, 1타로 도달할 수 있는 짧은 거리의 홀 4개로 조합된 것을 표준형으로 본다. 그린에의 샷은 정교한 기교를 필요로 하고, 마지막으로 지름이 11㎝도 채 못되는 홀에 볼을 넣는 것은 당구와 같은 섬세성을 필요로 하므로 종합 스포츠로서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

한편, 코스를 1바퀴 돌면 7∼8㎞의 거리에 이르므로 하이킹 또는 사냥 등과 같은 레크리에이션 효과를 즐길 수도 있다. 핸디캡의 채용으로 남녀노소가 동등하게 기(技)를 겨룰 수 있으며, 룰 적용의 심판은 플레이어 자신이 해야 하고, 규칙은 다른 스포츠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미묘하게 세분화되어 있는 점이 골프의 특징이다.
골프의 기원은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양을 기르던 목동들이 끝이 구부러진 나뭇가지로 돌멩이를 날리는 민속놀이가 구기로 발전했다는 설과 기원전 네덜란드에서 어린이들이 실내에서 즐겨하던 콜프(kolf)라는 경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네덜란드의 콜벤이라는 오늘날의 크리켓이나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구기가 14세기경 바다를 건너 스코틀랜드에 전래 되었다는 설이 있다.

15세기에는 골프가 지나치게 성행하여 국민의 무도(武道)와 신앙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칙령으로 전면금지하거나, 안식일에는 플레이를 금지하였다. 골프는 귀족계급에도 만연되어 왕도 즐겼으며, 16세기 이후에는 신분의 상하를 불문하는 스포츠로까지 발전되고, 잉글랜드에까지 파급되었다. 골프를 ‘Royal and Ancient Game’이라고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골프에 관해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1744년 스코틀랜드에서 지금의 에든버러골프인협회의 전신인 신사골프협회가 조직되어 경기를 한 것이 골프클럽과 경기대회의 시초이다.

처음에는 실버클럽대회라 하여 실물 크기로 만든 은제 트로피를 만들어 쟁탈전을 벌였다. 이 협회의 의사록에는 13개조로 된 세계 최초의 골프규칙이 기재되어 있으며 이것이 현행 골프규칙의 기반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뒤 스코틀랜드·잉글랜드 각지에 골프클럽이 만들어졌으며, 또한 선수권대회 형식의 경기도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코스(올드코스)가 있다. 이곳에서 1754년 5월 14일 22명이 모여 ‘더 소사이어티 오브 세인트앤드루스 골퍼즈’를 결성하였으며, 경기규칙의 제정, 핸디캡의 통일, 선수권 대회의 개최 및 운영을 담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 클럽이 영국 골프계를 통할하게 되었다. 한편 여성골프클럽은 1872년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조직되었다.

골프가 활발해지자 클럽이나 볼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직인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골프 기술에도 능했으므로 실기교습에 종사하여 프로페셔널로서 인정받았다. 1860년 처음 제1회 영국 오픈 선수권 대회가 열렸으며, 1885년에는 전영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가 시작되었다.

골프는 19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가 1873년 캐나다에 아메리카 대륙 최초로 로열몬트리올골프클럽이 창설되었으며, 1887년 미국 최초의 클럽과 코스를 자랑하는 폭스버그골프클럽이 발족되었다. 그후 20년도 못되는 동안에 황금기를 구가함으로써 영국에 맞먹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1894년 미국골프협회(USGA)의 전신인 미국아마추어골프협회가 창립되었고, 1895년 제1회 아마추어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으며, 같은해에 전미(US) 오픈선수권대회도 시작되었다. 현재 미국에 있는 3,400개 이상의 골프클럽이 미국골프협회에 가입했으며, 9개의 국내선수권대회와 6개의 국제아마추어선수권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미국의 골프는 20세기부터 영국을 능가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영국은 국력이 피폐해지면서 골프계도 침체되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호경기에 의해서 미국 골프의 대중화는 눈부시게 진전하여 모든 면에서 영국 등을 압도하였다.
한국 골프.한국에는 1897년 무렵 함경남도 원산을 통하여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골프의 시초는 1900년경 함경남도 원산항의 한국정부 세관관리로 고용된 영국인들이 세관 안의 유목산 중턱에 6홀의 골프장을 만들어 경기한 것이 처음이다.

또 1913년 원산 근처 갈마반도(葛麻半島)의 외인촌(外人村)과 황해도의 구미포(九味浦)에도 외국인 코스가 있었고, 나무울타리로 막아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 출입도 금지했기 때문에 규모는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골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영친왕(英親王)이다. 영친왕 부처는 1924년 무렵부터 일본에서 골프를 치기 시작해서, 이따금 서울에 와서 골프를 즐기기도 했다.

1921년 조선철도국은 미국인 댄트의 설계로 지금의 서울 효창공원(孝昌公園)에 9홀의 코스를 만들었다. 그러나 효창공원 골프장은 1923년 일대가 공원으로 지정됨에 따라 폐장되고 1924년 이왕가(李王家)의 육림 중심지인 청량리(淸凉里)로 옮겨 18홀이 완공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 골프사상 처음으로 ‘경성골프구락부(京城俱樂部)’라는 골프클럽이 탄생하였다.

그 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골프장 건설붐이 일어났으며, 이같은 영향으로 1937년 9월 전국 골프구락부 협의기관인 조선골프연맹 창립총회가 경성골프구락부에서 열려 한국골프를 새롭게 도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프로골프의 역사는 연덕춘(延德春)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17세 때부터 골프를 배웠으며 일본인의 주선으로 일본에 가서 골프수업을 받고 3년 만에 일본 오픈경기에 출전하여 8위에 드는 급성장을 보였다.

1941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일본 오픈경기에서 패권을 잡았다. 그가 배출한 수많은 프로선수 중에서 한장상(韓長相)이 1972년 일본 오픈경기에서 한국인으로서는 두번째로 우승하였다. 한장상·김승학(金承學) 조는 1971년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 골프에 출전하여 단체 5위에 들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한장상이 한국 오픈경기를 제패하였고, 김승학은 아시아 서킷 1차전인 필리핀 오픈경기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하였다. 또 1974년 조태운(曺泰雲)이 한국 오픈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한국 프로선수들은 큰 타이틀 5개를 쟁취하는 사상 초유의 ‘황금의 3년’을 맞이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최상호(崔上鎬)가 두각을 나타냈으며, 여자 프로골퍼로는 구옥희(具玉姬)가 미국과 일본에서 활약, 국제적 명성을 떨치고 있고, 원재숙(元載淑)·고우순(高又順) 등도 일본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다. 재일교포 김영창(金榮昌)은 1981년 미국에서 열린 제22회 세계아마시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여 세계 정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