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18일 수요일

이집트



kim sanghoon
건축
문화
기독교는 히브리인의 일신교에서 발전된 종교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창시되어 그의 사후 사도들의 포교로 로마를 중심으로 교세는 굳어지고 세계적인 종료로 발전되었다. 세계주의적 사랑을 바탕으로 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된 기독교는 귀족이나 노예도 동일시하고 로마인들이 즐기던 잔혹한 투기나 호탕한 대욕장을 비난하고 우상숭배를 부정하고 로마의 관습에 따르지 않았다.

이 시대는 고대가 중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이며 시대적인 특징은 기독교가 차츰 사회생활 속으로 그 세력을 뿌리내린 것과 게르만 민족이 4세기 초 북방 야만족이 북부 유럽을 침입함으로 인하여 이를 견디지 못하고 남하하여 로마령으로 옮겨와서 결국에는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국가를 건설했다는 점이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칙령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부터 로마네스크 양식이 시작된 9세기경사이에 기독교 건축에 집중되어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유럽지역에서 전개된 기독교적 건축양식

2. 초기 기독교 건축의 특성

재료 및 구조

재료나 구조에 있어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지 못하여 로마의 건축양식을 계승

로마에서 사용되었던 두 가지 구조방식을 지속적으로 사용

기둥과 보에 의한 가구식 구조

기둥과 아치에 의한 아케이드 구법

기독교 건축의 발달

대부분의 건축 활동이 기독교에 집중되어 교회, 세례당 등의 기독교 건축물이 발달

기독교건축 이외에 건축분야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발달도 부진

교회 건축양식의 정립

로마시대의 공공건물이었던 바실리카를 교회 건물로 전용

급속한 교세확장에 비해 교회재정이 빈약하여 새로운 건물의 건설이 곤란

교회에서 요구되는 집회 공간, 제단, 사제석 등의 기능과 기존의 바실리카의 기능이 상호유사

바실리카식 교회는 중세 교회건축의 원형으로서 로마네스크 양식을 거쳐 고딕양식에 이르러 완성됨

기독교가 공인되고 기독교 건축이 시작된 곳은 수도 로마였으나 곧이어 동방으로 천도함에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그 무대는 양분되었다. 박해에서 공인으로의 갑작스런 전환은 그들의 건축적인 전통을 가질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며, 또한 종교 자체가 좋은 종교건축을 처음부터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수한 형식의 건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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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시대건축



kim sanghoon
건축
문화
1. 개설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기원전 4.5세기에 있어서 이탈리아 반도는 큰 힘을 떨치지 못했으나 동방을 정벌하고 대제국을 세웠던 알렉산더대왕이 사망한 이후부터 점차 로마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발전되었다. B.C 273년경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세력을 몰아내고, 드디어 B.C 146년에는 코린트를 점령함으로써 그리스를 무너뜨리고 로마는 지중해상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로마가 최초로 건축된 B.C.753년부터 로마제국이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된 365년까지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제국과 유럽, 북부 아프리카, 서아시아 등의 로마 식민지에서 전개되었던 건축양식이다.



2. 로마 건축의 연대

제1기 : 에트루스카 건축시대 (B.C 750~300)

제2기 : 전기 로마 건축시대 (B.C 300~27)

제3기 : 후기 로마 건축시대 (B.C 27~A.D 365)



3. 에트루스카 건축

B.C.10세기경부터 에게해 북쪽 해안에서 국가를 형성

B.C.8세기경 중부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문화권을 형성하였으며 B.C.3세기경 멸망

건축구조 기술이 매우 발달

진정한 아치를 최초로 사용. 아치를 발전시켜 볼트 기법을 개발하여 사용

에트루스칸의 발달된 건축구조기술은 로마건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



4. 로마 건축의 특성

1)건축의 구성요소

가. 에트루스카의 영향

로마인들은 그들의 선주민이었던 에트루스카에서 아치와 볼트의 구조를 배웠고 점차 이것은 로마건축의 극히 주요한 요소가 되었다.

나. 그리스의 영향

그리스가 패망한 B.C 146년 이후에는 그리스의 조각물이 직접 로마로 반입되어 가로나 건물 내외의 장식물로 쓰여졌다. 또한 기술자도 데려옴으로써 그리스 건축의 형식이 직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 로마 건축의 특성

건축재료

콘크리트의 발명

화산재와 석회를 혼합하여 콘크리트를 제조

구조 및 시공기술의 발달, 건물의 대규모와 양식의 획일성 등을 유도

석재 및 벽돌의 이용

모르타르나 철물을 이용하여 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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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어키


kim sang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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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리엔트시대의 특징

고대 이집트 문명에 대립되는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이 발생지이다. 인류가 최초의 도시를 만들고 풍요롭고 다양한 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한 곳이며 고대도시에서 실용적인 문자체제가 발달하였다. 일찍부터 타 민족과의 교섭이 많아지고 상업은 농목업에 뒤따라 일어나서 메소포타미아 문화는 각지로 확산되었다.(바빌론 - 상업의 중심지)

과학 - 태양력이나 주제도를 위시해서 물시계, 해시계, 하루를 12시로 나누는 법, 10진법과 아치의 구법을 에투루스칸인에게 전수시켰다. 대단히 현실성이 강해서 모든 건조물은 왕에게 속하는 것이고 국토의 치수공사 등이 주요 대상이 되었다.



2. 메소포타미아 건축의 특성

가혹한 기후 조건과 제한된 건축재료 때문에, 많은 종족과 언어가 다른 침입자에 의해 그 주권이 수없이 교체되었음에도 건축적 발전은 일관성이 있었으며 모두가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특징

1) 흙의 문화

진흙 쌓기, 일건벽돌, 소성벽돌, 유약타일로 발전, 이토판에 새긴 설형문자 사용하였다.



2) 장방형실과 중정형식

모든 건물은 중정을 중심으로 장방형실이 집약된 구성을 하고 있다.



3) 아치 및 볼트구조

고대부터 사용, B.C4000년경에 이미 볼트 구조로 된 분묘가 있었으며 각 도시에도 볼트로 된 배수구가 있었다.



4) 고단 위의 종교건축

고단의 개념에 의한 종교건축이 대부분이며 거대한 벽돌조로서 정방형 또는 구형의 평면을 가지며 단형으로 고단을 만든 형식으로서 정상에 사당이 만들어지는 지구라트를 말한다.



5) 도시의 성곽구성

전쟁의 위협 때문에 모든 도시는 성곽으로 둘러지게 되며 어러 개의 성문이 내외를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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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문화 독일 구(서독,동독)


kim sang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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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반 데어 로에 Mies van der Rohe, Ludwig1886년 독일 아헨. Aix-Chepelle 에서 태어남.
1897~1900년 Aix-Chepelle 소재의 Cathedral School을 다님.
1900~1902년 Aix-Chepelle 소재의 Ecole des Arts et Metiers에서 공부.
1902년 석공이었던 아버지의 일터에서 현장주임으로 일함.
1903~1904년 석공세공인의 공방에서 치장벽토의 장식을 그림.
1905~1907년 베를린에 있던 부르노 파울의 스튜디오에서 견습 가구디자이너로 일함.
1908~1911년 베를린에서 피터베런스 건축사무소에서 실무경험.
1912~1937년 베를린에 건축사무실 오픈.
1921~1925년 그룹의 전시회를 개최.
1926~1932년 독일공작연맹의 부회장 역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바이젠호프 주거 단지' 건축.
1929년 바르셀로나의 국제전시회를 위한 독일 '파빌리온' 건축.
1930~1933년 뎃사우와 베를린의 바우하우스 교장 역임.
1931년 베를린의 구축전시회에서 '우리시대의 주거' 라는 제목의 공작연맹파트의 대표 역임.
1938~1958년 시카고에 위치한 일리노이 공과대학 건축대학학장 역임.
1938년 시카고에 건축사무실오픈.
1948년 시카고 고층건물 계획안에서 유리와 철의 커튼월을 처음 적용.
1950년 대구조스팬 시스템을 적용.
1959년 독일연방공로상 수상.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영예와 존경을 받게됨.
1963년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을 수상.
1969년 시카고에서 8월 17일 사망.

작품세계
◦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바르셀로나/스페인, (Barcelona Pavilion), 1929
◦ 판스워드 주택, 플라노/일리노이, (Farnsworth House), 1946~1950
◦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 시카고/일리노이, (North Lake Shore Drive Apartment), 1949~1951
◦ 시그램 빌딩, 뉴욕/미국, (Seagram Building), 1945~1958
◦ 크라운 홀, 시카고/일리노이, (Crown Hall, 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 1951~1955
◦ 베를린 국립미술관 신관, 베를린/독일, (New National Gallery, Neue Nationalgalerie), 1962~1968
- 20세기 모더니즘건축을 대표하는 독일의 건축가 -
루트비히 미스(그는 건축가로 기반을 잡았을 때, 어머니의 성인 '반 데어 로에'를 이름 뒤에 덧붙였음)는 유럽에서 가장 큰 역사적 도시의 하나이며 한때 카롤링거 왕조의 문화 중심지였던 독일의 아헨(또는 엑스라샤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석공으로 작은 가게를 갖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도와 다양한 건조물 제작에 참여했으므로 재료의 성질에 대한 감각과, 건축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숙련된 기능을 갖게 되었다.
미스는 정식 건축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는데, 그는 이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 듯하다. 15세 때 아헨의 여러 건축가들의 견습공이 되어, 벽에 꽂아놓은 커다란 갈색 종이에 르네상스 장식을 목탄으로 스케치하는 일을 맡았는데, 석고제작자들은 그 스케치를 바탕으로 석회 장식벽을 만들었다. 미스는 이것을 힘들어했지만 덕분에 드로잉 솜씨가 늘었고, 이 솜씨는 결국 그 당시의 가장 훌륭한 건축도면들을 낳는 밑거름이 되었다.
1905년 19세가 된 미스는 베를린의 한 건축가 밑에서 일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갔는데, 이 건축가는 목조 건축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목재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을 느낀 미스는 곧 그 일자리를 그만두고 당시 아르 누보 양식으로 작업하던 가구 디자이너인 브루노 파울의 견습공이 되었다.
2년 뒤에 미스는 첫번째 주문을 받았다. 전통적인 교외 주택을 설계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는 이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당시 독일에서 가장 진보적인 건축가였던 페터 베렌스는 그의 완벽한 솜씨에 깊은 인상을 받고, 21세의 미스를 자기 사무실에서 일하게 했다. 그 무렵 발터 그로피우스와 르 코르뷔지에도 베렌스의 사무실에서 막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크뤨러(Kroller)일가의 저택설계를 위하여 네덜란드에 있으면서 베르라게(Hendrik Petrus Berlage,1859~1934)의 건축에 감명을 받은 이후 구조의 진실성과 논리는 미스의 중요한 조형 논리가 되었다.
독일 공작연맹의 부회장으로 있던 1927년, 스투트가르트시에서 열린 바이센호프지들룽(Weissenhofsiedlung)이라는 건축전시회를 주관하여, 장식이 배제된 현대건축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1929년의 바르셀로나 박람회 독일관과 이후의 몇 개 건축물에서 그는 돌, 철, 유리, 카펫 등의 재료를 현대적으로 가공처리하는 풍부한 소재사용 능력을 보여주었다.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치정권 하에서 설 자리를 잃은 미스는 1938년 시카고의 I.I.T.(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의 건축과장으로 초빙되어 캠퍼스 마스터 플랜을 비롯한 포스트모던 이전의 기능주의 건축의 모범이 된 일련의 건축들을 꽃피우게 된다.
그의 건축은 당시대 건축기술의 표현이었고, 건축공간의 융통성에의 적극적인 대응이었다. 단순한 모델을 진실하게 표현한 그의 건축조형은 비례와 재료(질료) 자체로 성립된다. 전통적인 고전주의 미학과 근대 산업이 제공하는 소재를 교묘하게 통합한 그의 건축은 건축사상 한 시대를 여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건축세계 -
"Less is More" (보다 적은 것이, 보다 풍부한 것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라이트, 르 꼬르뷔제와 나란히 20세기 최대의 건축거장이다. 그는 처음엔 유럽에서 활약했으나, 그의 진면목은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에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이상으로 삼았던 것은「거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시카고를 방문하여 시카고의 마천루가, 그의 이상을 건축 속에 구체화시키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도시로 생각했다. 그는 공장에서 생산된 철강과 그 골조가 바로 미국에서 기술적으로 진보한 건축의 본체라고 생각했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거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이라는 말속에, 건전한 건축은 그 구조도 당연히 귀결하므로서 저절로 형태를 얻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러나 또,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올가미가 된다. 이 반어적인 말에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금욕적인 건축이념이 필요로 했던 수많은 미적 결단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의 강제 디테일은 신경질적이다 할만큼 정교하다. 얼핏 추상적이라서,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Less is More: 보다 적은 것이 보다 풍부한 것이다.」라는 말은 그의 미의식의 출발점이었다.

독일에서 건축가로 출발할때부터 미스는 과거양식을 모방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대신 사용 재료의 특성을 명료하게 전달해주는 기술적 수단을 추구했다. 그는 구축의 엄격한 표현을 선호하여 모든 장식을 거부했다.
그의 많은 계획은 지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그것들은 그 각각의 시대에는 너무나 대담한 유토피아였다. 무엇보다 이것은 사상을 만든 건축이었다. 재료에 내재하는 이런 특질은 이미 미스의 목탄 스케치와 모델에서 확연하다.
특히 유리는 고층건물의 둔감한 외피로서 간주된것만은 아니다. 도리어 유리는 빛이 굴곡된 벽에 부딪히는 방식에서 반사와 그림자를 만드는 풍요로운 요소로서 이해된다. 전체의 접근은 어떤 근본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구축체계에 새로운 강조를 두는 것으로 구성된다.
"규율" 이 말은 미스의 삶과 일의 표어였다.
규율, 질서, 명징함, 진리.
첫째 - 벽돌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응시하는 것
둘째 - 한가지 재료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어 여러 가지 전통적 재료로 나아가는 이성적 훈련이다.
셋째 - 현대의 특징적 재료 철, 콘크리트, 유리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
넷째 - 현대가 요구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

실용 목적은 물질적 진보의 척도일 뿐이다.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는 일이야말로 문명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무엇이 기능이고 무엇이 가치있는 일 인가를 하나씩 명확히 해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미스의 건축에 보편성을 가지고 온 건축적 문제 - 기둥과 피막
미스가 자주했던 "Less is More " 는 말수가 적었던 시절의 성격을 나타낼 뿐 아니라 철저히 아이디어를 정제해 내는 그의 제작 태도를 이야기 해 준다. 솔직함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라는 문제에서는 철과 콘크리트는 강함을 나타내는 건물의 뼈이다. 유리는 빛나는 베일처럼 그 뼈를 감싸는 외피이다.
미스의 마천루 계획안에서 뼈와 외피가 완전히 분리되어 뼈는 안에, 유리 외피는 밖에 두고 바닥과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는 일과 날씨로부터 실내를 지키는 일 사이에 시각적으로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이 부여되어 있다.
미스의 주택 작품에서 보이는 선형 비대칭의 평면 구성은 데 스틸과의 화가가 즐겨 사용하던 직선 장방형, 사각형 처리법의 어느 부분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벽돌 주택 - 네모난 유리오 벽돌 덩어리 조합은 반통겔루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평면계획은 몬드리안의 초기 회화를 연상시킨다.
1910년 라이트 베를린 전시에서 미스가 라이트로부터 얼마나 강하게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평면은 전형적인 라이트의 전원주택 그대로이다. 미스에게 건축이란 재료로부터 공학을 거쳐 중요한 형식과 예술서에 이르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교육에 의하면 우리들은... 우연성과 임의성에서 탈출하여 합리적인 명쾌함과 이성적 순서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 미스 반 데 로에 건축의 특징 -
수직과 수평에 의한 기하학적 가변공간.
내·외부 공간의 상호관입.
구조의 명쾌함.
엄격한 비례미와 세련된 디테일.
코어 시스템.
신재료의 사용에 의한 공간개념과 미학의 표현.
● 미스 건축의 5원칙
1. 건축적 요인으로서 구조
2. 공간의 건축적 문제
3. 건축표현수단으로서 비례
4. 재료의 표현가치
5. 회화와 조각과 건축의 관계

● 가구
미스는 공간에서 가구의 역할을 중시하여 건축, 실내, 가구의 조형적 통합을 추구하였으며 가구가 특정 공간, 특정 위치에 놓일 것을 고려한 디자인을 함.

● 건축철학
형태 - 'LESS IS MORE' (적게 장식하면 할수록 공간적으로 풍부하게 느껴진다)라는 말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형태구성에서 장식적 요소가 없는 미니멀한 형태의 강조
‘디테일에 신이 살아있다’는 말처럼 1/1 디테일 모형으로 건물의 디테일을 검토.
유니버설 스페이스 - 실내공간에 방의 개념보다는 오픈 스페이스라는 개방된 공간으로 공간의 균질성과 가변성, 내·외부 공간의 상호관입을 추구.